어제 책방 나들이를 했다 큰 애 생일 겸 크리스마스에 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책이라도 몇 권 사줄 요량으로였다 하도 오랜만의 책방 나들이라 익숙해지는데 한참이 걸렸다 서가에 익숙해지는 데도 그랬지만 하나같이 장난 아닌 책값을 보는 일도 익숙해지는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책을 쓴 사람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가격도 적다 해야겠지만 문제는 굳이 양질의 종이와 하드 카바로 제본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싶은 책들이 모두 최고급 종이와 보기에도 불편한 양장 제본으로 나와 있었다는 점이다 심했다
새벽에 일어나 잠깐 웹서핑을 한다 이런저런 말도 많고 볼 꺼리도 참 많다 그런 가운데도 다른 이의 잘못된 점은 눈에 쏙쏙 잘도 들어와 박힌다 나는 왜 다른 이의 단점이 이다지도 잘 보이는 걸까 확실히 문제적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
<덧> 바깥 날씨가 꽤 차다 잠옷 바람으로 밖에 담배 피러 나갔다가 추워 시껍했다죽는 줄 알았다 혼이 났다 파커를 끄집어내어 입고서야 컴터 앞에 다시 앉았지만 지금 키보드 두드리는 손가락이 다 곱을 정도다 추운 거 좋아하는데 찬 배를 하나 깎아 먹고 난 참이어서 더 한 모양이다
얼마 전에 목형이한테 모비 딕을 사줬다 오늘 물어보니 다 봤댄다 기특하다 맨날 만화만 그리고 해서 책읽기는 아예 포기하고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걸 그새 다 읽다니 다른 걸로 하나 더 사주까 했더니 노~란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래도 이번 일 끝나고 나면 서점에 가서 하나 더 사줘봐야지 ^^
사람의 됨됨이는 곧잘 아주 사소한 데서 드러난다 예컨대 전화하는 모양새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크기를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일부러 받지 않는 줄 알면서도 계속 전화를 하는 거나 통화하는 도중에 조금만 못마땅해도 크게 신경질을 내거나 함부로 말하는 건 자신이 그 정도 깜냥의 사람이라는 걸 온 세상에 대고 스스로 떠들어대는 짓이다 어리석은 이를테면 오늘 내가 한 짓같은
사람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정확히 바로 볼 수 있을까 거울을 보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어~ 할 때가 더러 있다 이게 내 모습인가 싶어하는 정도를 넘어 영 아니지싶을 때도 있다 늘 마주 하는 겉모습의 경우가 이럴진대 하물며 눈앞에 보이지 않는 그 정체성의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할까 쉽지 않은 일일 터다
너 자신을 알라 2500년 전 그리스 사람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이다 소크라테스같은 현인조차도 스스로의 모습을 바로 보는 일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 도깨비는 그리기 쉬운 법이더라고 눈에 보이지 않아 스스로에 의해 이리저리 덧칠되었기 십상인 자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볼 수 있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
그런데 이처럼 붙잡기 힘든 자신의 모습이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서는 아주 쉽게 그 정체성이 드러나곤 한다 다른 사람의 단점과 약점을 지적하다 그게 실은 스스로의 한계이자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당혹감이란..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.
오늘 어느 모임에 들렀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의 한계가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수 년 동안 언죽번죽한 변명으로 일관해온 나의 한계였다 다른 사람한테서는 저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문제를 왜 자신으로부터는 볼 수 없었던 것일까
답은 아주 간단하다 문제와 마주하기를 애써 피한 때문이다 그 한계와 맞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고 더 정확히는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견디는 일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
이유가 분명해졌다면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해소되었는가 아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직시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두렵다 이 글이 요령부득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